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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
뚜벅뚜벅 이탈리아 공공의료
부제목
:
피에몬테 에밀리아로마냐 의료견문록
지은이
:
문정주 지음
서지사항
:
20201015 | ISBN 978-89-85635-99-8 | 384쪽 | 152*225
판매가
:
22,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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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설명
:
이탈리아 피에몬테주와 에밀리아로마냐주의 일차의료 현장을 살피는 ‘비대면’ 여행
 
이탈리아는 ‘관광 천국’으로 불릴 정도로 볼거리, 먹을거리가 많은 서유럽 국가 중 하나(였)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지속되어 이동이 전처럼 자유롭지 않은 만큼, 일상사이던 바다 건너 ‘여행’이 이즈음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뚜벅뚜벅 이탈리아 공공의료》를 펼치면 이탈리아 시민들이 건강권 획득과 공공의료 기반을 다지기 위해 ‘뚜벅뚜벅’ 걸어온 역사, 피에몬테주와 에밀리아로마냐주의 일차의료 현장을 살피는 ‘비대면’ 여행이 시작된다.

출판사 서평

“건강은 권리다.” “노인 목숨도 중요하다.”

2020년 6월 밀라노 대성당 앞에서 시민들이 피켓을 들었고, 베라가모 코로나19 희생자 유가족들은 인명 피해가 커진 경위를 알 수 있게 주정부 당국자를 조사해 달라는 고소장을 검찰에 제출했다. 첨단 유행의 도시, 중세 유적 도시 등 각기 관광지로 널리 알려진 두 도시는 모두 이탈리아에서 가장 잘산다는 북부 롬바르디아주에 속해 있다. 지난 3월 이탈리아 코로나 환자와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이 주에서 발생했다.

한편, 한국에서는 지난 8월 정부의 의료정책을 ‘악’으로 규정한 의사 단체 주도의 집단 휴진과 의대생들의 수업·실습・국시 거부가 수도권 코로나19 재유행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속돼 국민의 공분을 샀다.
“국시 접수 취소한 의대생들에 대한 재접수 등 추후 구제를 반대합니다.”
“의사집단을 괴물로 키운 2000년 의료악법의 개정을 청원합니다.”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파업을 강행하는 대한의사협회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대응을 요구합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세 청원은 모두 20만 명(57만 명, 36만 명, 22만 명)을 넘겨 답변 대기 중인 청원 상위권에 올라 있다.

가정의학과 전문의이자 공공의료 연구자인 저자는 2015년에 석 달 동안 이탈리아에서 지내며 국영의료 현장을 견학하고 내용을 3년 동안 꼼꼼히 갈무리해 의료견문록 《뚜벅뚜벅 이탈리아 공공의료》를 썼다. 탈고 단계에 있던 지난 3월, 공교롭게도 이탈리아에서 코로나19 대참사 소식이 들려 왔고, 저자는 이탈리아를 비롯해 유럽의 코로나19 초기 대처에 대한 분석을 보태 책을 다시 마무리했다. 이후 출간을 준비할 즈음, 이번에는 의사들과 의대생들의 집단행동이 일어났다. 의사들은 정부가 의료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며 의사를 가리켜 ‘공공재’라 하는 것을 그대로 둘 수 없다고 주장했고, 국민들은 의사가 오만한 엘리트주의에 빠져 억지를 부린다고 비난하며 의사들에 대한 강력 대응을 청와대 게시판에 청원했다. 이 사태가 지속되던 한 달 동안 의료정책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 뜨거웠다.

공공의료의 핵심, 일차의료

한국, 일본을 제외한 모든 선진국(미국은 민영이 운영하는 일차의료가 있다)에서는 ‘일차의료제도’ 운영한다. 사람들은 동네에 있는 가정의를 자기 일차의료 의사로 정해 등록하고 이 의사는 평상시 건강관리를 맡아 가벼운 진료와 상담을 제공하고, 환자가 검사나 입원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야 할 때면 의뢰서를 작성해 준다. 병원에서는 검사나 입원 치료를 시행한 뒤, 결과를 가정의에게 알려 주어 환자가 지속적으로 건강관리를 할 수 있게 돕는다. 가정의가 제공하는 상담과 진료 등 일차의료는 환자에게 무료다. 대신에 의사는 그에게 등록된 주민이 몇 명인지를 기준으로 국가나 의료보험조합에서 보수를 받는다. 일차의료가 활발하면 국민의 건강 수준이 향상되고, 입원 횟수가 감소하며, 응급실을 이용하는 횟수가 줄어들고, 만성질환을 앓는 환자의 합병증 발생도 감소한다. 질병을 평소에 예방하고 초기에 치료하므로 국가적 의료비용은 줄어든다.

한국의 의료제도에서는 시장이 중심이다. 정부가 관리하는 건강보험이 시장의 단점을 보완해 의료의 공공성을 그런대로 지켜 왔지만 의료기관이 수도권과 대도시에만 몰려 농어촌에는 부족하고, 의료기관 대부분이 사립이어서 수익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며, 건강보험이 통제하지 못하는 비급여 의료 시술이 많아 환자에게 경제적 부담이 상당하다. 또한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고령 인구가 늘면서 기존 의료체계로는 답을 내기 어려운 문제가 산적해 있다.

의료 공공성 강화를 위한 양대 축이 공공병원 확대와 일차의료제도 도입이다. 특히 인구 고령화와 함께 만성질환자의 급증이 예상되는 한국 사회에는 생활에 밀착해 건강을 관리하는 일차의료제도 도입이 시급하다. 이탈리아는 일차의료에 관한 한 우리가 참고할 만한 국가다. 지금 유럽이 코로나19로 대유행을 겪는 중이고 이탈리아는 그 유행을 출발시킨 나라가 되었지만, 공적 의료체계 운영에 관해, 일상에서 건강을 지키는 일차의료제도에 관해 여전히 그들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있다.

책 내용

1부에는 첫 방문지인 피렌체 시청과 메이에르 어린이병원을 구경한 소감, 알프스의 산자락에서 가정의 안나마리아를 처음 만난 날의 풍경, 남부와 북부의 도시에서 저마다 다른 양상을 보인 공공 대중교통, 이탈리아 국영의료의 발원인 19세기의 통일과 현대사를 정리했다.

2부에는 일주일간 일차의료 진료실에서 관찰한 다양한 환자, 진찰하고 대화하는 가정의 안나마리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전한다. 가정의가 처방한 대로 환자가 영상의학검사를 받거나 심장초음파 등 전문의 진료를 받고, 그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갖고 와 가정의와 다시 상의하는 순환적 진료의 광경을 볼 수 있다. 또 환자의 집을 내 집처럼 기억해 익숙하게 찾아가는 가정의의 왕진, 암 환자 등 중증 환자를 여러 전문가가 찾아가는 통합가정돌봄의 현장, 일차의료는 다른 무엇보다 의사-환자 사이의 관계와 거기서 얻어지는 신뢰에서 시작된다고 입을 모아 말하는 열두 명의 가정의, 그들과 벌였던 특별하고도 조심스러웠던 토론을 기록했다. 마무리에는 가정의 선택하기와 바꾸기, 가정의의 책임과 권한, 자격, 진료 규칙, 보수 등 가정의 제도를 구성하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전한다.

3부에는 영의료의 가장 큰 영역인 동네의료, 즉 시민이 일상적인 생활공간에서 이용하는 의료를 소개한다. 볼로냐 보건의료본부를 방문해 파악한 조직체계와 내용 전반, ‘보르고-레노 건강의집’을 견학해 보고 들은 현장 모습을 기록했다. ‘건강의집’은 일차의료의 효과를 최대로 높이기 위해 고안된 건물이자 네트워크다. 가정의 그룹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진료 공간이며, 상담과 진료와 검사 등 폭넓은 서비스를 제공해 동네의료를 최대 범위에서 실현하는 장소이자, 여러 분야의 보건의료 전문 인력이 협업하게 이어 주는 연결망의 중심이다. 이 집에는 정신질환자가 병원에 격리 수용되지 않고 지역에서 시민으로 함께 살 수 있게 지원하는 정신건강센터도 같이 있다.

4부에는 어떤 의료기관이든 예약해 주는 공공예약센터, 에밀리아로마냐주가 개발한 통합 예약 전산망과 개인별 전자 건강문서집을 소개한다. 이어서 이탈리아 병원의 역사와 관리 체계의 변천, 권역 안에서 연결되고 협력해 제공통합되는 병원의료, 병원의 종류와 입원 방식, 의료 질 관리체계를 담았다. 또한 이탈리아 병원에 입원한 한국인 환자의 경험, 이탈리아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연수한 한국인 의사와 인터뷰한 내용을 기록했다. 끝으로 이탈리아 코로나19 대유행의 출발점이자 가장 심각한 유행지가 된 롬바르디아 주정부의 미흡한 방역 행정과 민영화된 의료체계, 안일한 판단으로 방역의 골든타임을 놓쳐 버린 유럽의 초기 대응을 짚어본 뒤 세계적인 모범이라 주목받는 우리나라의 방역 성공 요인과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를 정리했다.

헌법에 건강권을 명시한 나라

이탈리아는 1948년 헌법에 건강권을 기본권으로 명시했고, 30년의 진통 끝에 1978년 <국영의료법>이 통과되었다. 이때부터 거주 자격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국영의료에 등록해 가정의를 정하며, 무상으로 일차의료를 이용한다. “환자가 가장 환영하는 서비스”인 통합가정돌봄이 있는 나라, 시민이 자기 동네에서 의료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자율적으로 건강을 누리는 ‘동네의료’가 있는 나라, OECD 최고의 일차의료를 제공하는 나라다.

그런데 주별 자치권이 확실한 이탈리아에서 국영의료는 20개 주별로 운영되는 ‘주영의료’라 할 수 있다. 제도의 기본 틀과 운영 원칙은 공통이지만 세부 내용에서는 주정부의 이념과 방침에 따라 차이가 난다. 대표적인 예가 롬바르디아주로, 북부 몇 개 주만 분리해 독립 국가를 세우자고 주장하는 보수 정당이 장기 집권하면서 1990년대 후반부터 의료 민영화 정책이 추진됐다. 밀라노시를 중심으로 사립병원이 늘어나고 시장 의료 영역이 확대되며 대신에 의료의 공공성이 위축되었는데, 바로 이 주에서 올해 2월에 코로나19 유행이 발생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퍼져 그 때문에 나라 전체가 코로나19 대참사국이란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었다. 다행히 베네토 등 이웃 주는 곧 사태 수습을 했고, 북부의 대유행이 로마 이남의 중부와 남부에까지 번지지 않게 차단하는 데 성공해, 국영의료의 대응력을 오히려 확인하게 했다. 이처럼 주별 의료 운영의 차이,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재정 곤란 등, 이탈리아 국영의료가 직면한 과제 또한 적지는 않다.

이 책에는 아슬, 테리토리 의료, 동네의료, 건강의집, 통합가정돌봄 서비스, 일차의료 핵, 온라인 의료정보체계, 민주적 정신의학, 온라인 건강문서집, 모성보호 가족상담실, 구역 어린이 의사 등 생소한 용어가 여럿 등장한다. 공적 의료체계가 빈약한 우리 사회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의료, 볼 수 없는 의료인이다.

“환자와 의사가 서로 귀 기울여 듣고 대화하는,” “‘나를 잘 아는 의사가 있는,” “각자 살아가는 장소에서 건강을 증진하고 유지하며 회복하게 하는,” “지역에서 의료와 복지가 연결해 제공되는” 서비스를 우리는 받지 말라는 법이 없을 텐데 말이다.

상상력을 북돋우기

이탈리아는 ‘관광 천국’으로 불릴 정도로 볼거리, 먹을거리가 많은 서유럽 국가 중 하나(였)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지속되어 이동이 전처럼 자유롭지 않은 만큼, 일상사이던 바다 건너 ‘여행’이 이즈음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뚜벅뚜벅 이탈리아 공공의료》를 펼쳐 이탈리아 시민들이 건강권 획득과 공공의료 기반을 다지기 위해 ‘뚜벅뚜벅’ 걸어온 역사, 피에몬테주와 에밀리아로마냐주의 일차의료 현장을 살피는 ‘비대면’ 여행을 떠나 보자. 이 여행을 함께하다 보면 의료정책의 수혜자이자 당사자인 국민과 환자는 공공의료 정책 결정에 ‘뚜벅뚜벅’ 발걸음을 디딜 용기와 힘을, 정부의 정책 입안자는 신선한 아이디어를 얻게 될 것이며, 의료계에서는 집단행동을 자성하고 공공의료 강화를 위해 노력하는 소수자의 소리에 힘이 실릴 것이다.

“변화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내가 할 일은 바로 그것, 공공의료에 관한 상상력을 북돋우는 일이다. 우선 쪼그라든 내 상상력부터 돌아보고, 나뿐 아니라 의료제도에 관심을 두고 있는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되게, 또는 그런 관심이 없던 이가 의료제도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게 하는 일이다. 관심이 상상으로 이어지고 상상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변화는 어느새 다가올 것이다.”-- <여는 글>에서

저자 소개

문정주
공공의료 연구자·가정의학과 전문의. 종합병원에서 임상 의사로 12년, 보건소 공무원으로 10년,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의료지원단에서 연구원으로 10년간 일했다. 공공보건의료 강화, 공공병원 평가와 지원에 관한 보고서를 다수 썼다. 공공성을 의료의 핵심이라 생각하며 우리나라 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 일차의료제도 도입이 시급하다고 본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겸임교수를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임감사로 일한다.

차례

여는 글 공공의료에 상상력이 필요하다

1. 이야기가 많은 나라

이탈리아가 내게 들어왔다
이탈리아 어린이병원을 만나다 | 피렌체, 벼락치기 방문 | 메이에르 어린이병원

알프스 산자락에서
이탈리아 전문가 S | 가정의를 만나다 | ‘동네 의사’가 되고 싶었다

이탈리아반도 여행
찬란한 유적과 허술한 현실이 공존하는 남부 | 남부에 이어졌던 착취와 차별의 역사 | 명품 산업단지가 즐비하고 공화제 전통이 확고한 북부 | 그래도 사람들은 비슷해 | 먼 길을 돌아 도착한 볼로냐

좌우 타협으로 탄생한 국영의료
이탈리아 통일 | 통일 초기의 노동자 건강 보호 | 북부 공업 지역의 대규모 노동운동 | 파시즘 독재와 노동자 건강의 위기 | 이탈리아공화국의 탄생 | 차별적 보험제도와 의료 불평등 | 68혁명이 몰고 온 격변 | 국영의료의 탄생 | 대승적 협력의 위태로움

2. 일차의료

누구에게나 가정의가 있다
친밀한 의사, 돕는 의사 | 전문의가 가정의에게 보고서를 | 의사의 눈과 귀는 환자 한 사람에게로 | 수많은 요구에 대응하려면 | 찾아오는 이주민 | 의원 풍경

환자의 집을 다 알고 있다
비엘라 아슬의 코사토 분소 | 얼마나 여러 번 왕진한 것일까 | 의사 등 7개 분야 인력이 집으로 온다 | 약국의 24시간 자판기

코사토의 밤 토론회
수요일 밤 9시 | 한국 의료제도 | 그룹 진료를 요구받는 이탈리아 가정의 | “환자와 일대일 관계가 무엇보다 소중하다” | 환자가 마지막을 집에서 가족과 지내게 | 소통과 조정이 필수일 텐데 | 환자가 가장 환영하는 서비스입니다

이탈리아 가정의
건강 보호에 책임을 진다 | 국영의료의 중심이다 | 등록 환자의 진료에 규칙이 있다 | 정부가 보수를 지급한다 | OECD 최고의 일차의료를 제공한다

3. 동네의료

동네에서 건강을 지키다
드디어, 접속 | 에밀리아로마냐주 | 볼로냐시 | 국영의료의 몸통인 아슬 | 동네에서 쉽게 이용하는 동네의료 | 동네의료의 중심, 일차의료 | 우리에겐 영국의 대처 총리가 없어서요

건강의집
‘카사 델라 살루테’를 찾아서 | 구역 어린이 의사를 만나러 온 엄마 아빠 | 과목별 전문의 진료 | 일차의료를 확장하는 공간들 | 민주적 정신의학을 꽃피우다 | 시민의 눈으로 만든 사진집

4. 병원의료

어떤 병원이든 여기서 예약하세요
열린 예약과 닫힌 예약 | 쿠프에 꼭 가봐야 해요 | 국영의료를 뒷받침하는 IT | 공공 통합 예약망, 쿠프 | 온라인 의료 네트워크, 솔레 | 온라인 건강문서집 | 주체가 여럿인 분권 체제

오랜 건물에 첨단 의료를 품다
보호와 자비의 공간 | 현대 의료기관으로 | 권역을 아우르는 병원망 | 병원에 입원하기 | 병원은 안전을 위한 사회적 공동 기반

한국인이 본 이탈리아 병원
한국인 환자가 본 이탈리아 병원 | 한국인 의사가 본 이탈리아의 병원 | 환자에게 의사가 어떤 존재로 여겨지는가

롬바르디아의 코로나19 대참사와 공공의료
코로나19 대유행 | 롬바르디아주 | ‘치명적인 예외주의’ | 우리에게 과제는

맺는 글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건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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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이탈리아 용어 정리
찾아보기

책 속에서

68혁명의 열기가 의료 분야를 비켜 갈 리 없었다. 오히려 대중의 관심이 큰 만큼 의료는 68혁명에서 중요한 논제였다. 시위대가 대학병원을 점거하는 일이 벌어졌고 질병을 치료할 뿐 환자의 고통에 관심을 두지 않는 의료, 가난한 사람을 무시하는 의료진, 지배 계급에 특혜 주기를 당연시하는 의과대학 교수를 비판하는 과격한 구호가 터져 나왔다.(97쪽)

국영의료제도가 이탈리아 의료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시민의 관점에서 그 변화를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누구든 가정의를 선택해 일차의료를 무료로 이용한다. 둘째, 전문의 진료와 검사 등 다양한 외래진료와 가정간호를 동네에서 이용할 수 있다. 셋째, 입원&#65381;수술&#65381;분만&#65381;응급 등 병원의료를 가정의의 의뢰 절차를 통해 무료로 이용한다. 넷째, 의사가 처방한 필수 약품을 무료로 구매한다.(99쪽)

안나마리아 의원은 그저 조그만 진료실에 낡은 책상을 두고 그와 환자가 마주 앉는 곳, 환자와 가정의가 오랜 관계로 서로 익숙한 곳, 환자와 의사가 서로 귀 기울여 듣고 대화하는 곳, 환자 상담을 자신의 주 업무로 삼는 의사가 있는 곳이다. 그래서 의원에 시설로는 진료실과 복도, 대기실을 겸한 조그만 회의실, 화장실 한 칸이 전부다. 의료 장비로는 청진기, 수동 혈압계, 조그만 심전도 기계, 팩스, 노트북 컴퓨터가 전부다.
다시 말해 안나마리아 의원은 우리나라 개인 의원과 성격이 다른 공간이다. 일차의료제도가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많은 낯선 공간이다.(128쪽)

도착 장소에 가까워지는지 안나마리아는 우리가 만나게 될 환자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참 좋은 사람이야.”로 시작해 몇 살인지,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 지금 건강이 어떤지, 누구와 사는지 등. 기록부나 메모를 찾아보는 일은 없고 그저 머릿속 기억을 불러내 들려준다. 환자의 건강과 병력뿐 아니라 인생 여정을 다 기억하는 듯하다.
게다가 환자의 집을 다 알고 있다. 시골이라 이정표가 될 만한 큰 건물이 없고 상점도 거의 없어 언덕을 오르고 모퉁이를 돌아도 내 눈에는 거기가 거기 같은데 그런 길을 안나마리아는 내비게이션도 없이, 전화로 길을 묻는 일도 없이, 마치 날마다 가는 데처럼 운전한다. 얼마나 여러 번 간 것일까.(131쪽)

진료실을 열어 두는 시간의 길이로 의료의 효과가 결정된다면 한국은 최고의 의료, 최고 수준의 건강 상태를 보일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않다. 2017년 OECD 자료를 보면 한국에서 자신의 건강 상태가 양호하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32.5%)이 이탈리아(66.6%)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고, OECD 회원국 중에 꼴찌다. 또 만성질환자가 병이 악화해 입원하는 숫자가 한국에서는 인구 10만 명 당 당뇨병 281명, 기관지 천식 309명으로 많은데 이탈리아에서는 각각 40명, 64명에 그친다. 이 점에서 이탈리아는 OECD 회원국 중에 일차의료가 가장 뛰어나다고 인정받는다.(159쪽)

“통합가정돌봄을 받는 환자는 대개 노인이고 80세가 넘은 사람이 많아요. 인생의 마지막 시기에 다다른 분들이지요. 그들이 자기 집에서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게 돕는 것은 당연하고 그래서 중요해요. 아무리 환자라 해도, 거동이 불편해졌어도 사랑하는 사람 곁에서 자기 인생을 살 권리가 있어요.”
자기 집의 환한 거실에서 안나마리아를 반기던 노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자기에게 익숙한 장소에서 오래 손길이 닿던 물건을 쓰고 가족의 도움을 받으며 인생을 마무리하는 노인들. 찾아온 의사도 오랫동안 관계를 맺은 가정의다.(161쪽)

“가족상담실을 알고 있나요? 건강의집이나 외래진료센터에 있는 상담실이에요. 여성을 조산사와 사회복지사가 상담하고 건강 문제뿐 아니라 경제나 주거 같은 사회적인 어려움도 해결하게 도와줘요. 산부인과 진료실이 가족상담실과 통합되어 있답니다. 진료실 전문의가 가족상담실 의사를 겸해요.
산부인과 진료에는 가정의의 의뢰가 필요 없어 어떤 여성이든 쉽게 이용할 수 있어요. 또 거의 모든 검사나 치료가 무료여서 돈이 없는 환자도 걱정 없이 올 수 있고요.”(223쪽)

“이탈리아에는 정신병원이 없어요. 정신병원 운영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죠.”
뭐라고요? 깜짝 놀라는 나를 보며 루카가 빙긋 웃는다.
“정신과 환자를 병원이 아닌 동네에서 치료한답니다. 정신병원에 입원하면 환자가 사회와 격리되고 그 기간이 길어지면 퇴원 뒤 사회에 적응하기 어렵지요. 격리 상태에서 환자의 인권도 침해되고요.
적절한 약을 먹고 치료하면 입원하지 않아도 아무 문제 없이 생활할 수 있어요. 환자가 외래진료로 꾸준히 치료받도록,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도록 돕는 곳이 정신건강센터예요.”(235쪽)

의사의 설명이나 처방을 일일이 외울 수 없지만, 이 문서집이 있으면 걱정이 없겠다. 여행지에서 갑작스레 몸이 아파 낯선 의사에게 진료받게 되더라도 안심이다. 내 건강 상태, 앓고 있는 병명, 최근의 검사 결과, 복용하는 약을 정확히 말할 수 있다. 손에 쥔 스마트폰으로 문서집을 찾아 읽으면 된다. 스스로 건강을 관리하기도 더 쉽겠다. 몇 년 전에 견줘 건강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앞으로 의료기관 재방문을 언제 해야 하는지 등을 손바닥 안에서 알 수 있을 테니까.(276쪽)

이탈리아에서 병원과 병상이 줄고 있다. OECD 통계로 2000년도에 인구 천 명당 병상 수가 4.7개였으나 2016년에는 3.2개로 줄었다. 유럽 최고의 초고령 국가이므로 만성질환자가 많고 입원 수요도 큰데, 지난 십여 년 동안 병상이 오히려 줄어든 것은 입원 수요의 증가를 상쇄하는 강력한 정책이 작동했음을 보여 준다. 주로 낮 병원과 낮 수술을 도입해 입원하되 숙박하지 않는 방식을 장려하고, 일차의료와 동네의료로 고령층의 질병을 초기에 대응하고 만성질환의 관리 수준을 높여 입원할 환자 수를 줄이는 정책이다.(302쪽)



“이탈리아에서는 의사가 사회적으로 존경받아요. 사람들이 의사에게 우호적이고요.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꼭 그렇다고 할 수 없잖아요. 의사를 신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게 아니죠.
사실, 이탈리아에서 소득세율이 높아서 의사가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해요. 월급이 500만 원을 넘어가면 그중 40%가 세금으로 나가버리니까요. 병원이 월급을 올려 주거나 또는 의사가 사적 의료로 환자를 진료해서 수입을 올린다고 해도 세금을 떼고 나면 오르기 전과 다를 것이 별로 없어요.
대신에 사람들이 알아주는 거예요. 의사가 새벽부터 병원에 나가 일하고 공부하고 연구한다는 걸 말이죠. 돈을 크게 더 버는 것도 아니면서 환자를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을요. 그래서 의사를 존경해요. 그렇게 인정받고 존경받는 것이 부러웠어요.”(321쪽)

“주정부 스스로 행정 역량을 줄인 것이 이런 대유행을 만든 거예요. 공적 영역 대신에 시장을 키워야 경제가 번영한다고 말이죠. 석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롬바르디아주는 감염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 주와 지리적으로 맞닿은 베네토주, 에밀리아로마냐주에서도 같은 시기에 집단 발생이 시작되었는데 거기서는 효과적으로 전파를 차단해 대조가 뚜렷해요.”
숫자가 보여 주는 롬바르디아주의 사태는 참혹하다. 인구 1천만 명에 코로나19 감염 확진자가 9만 2천명, 사망자가 1만6천 명이다(2020년 6월 18일 현재). 20개 주가 있는 이탈리아에서 전국 확진자의 40%, 전국 사망자의 50%가 이 주에서 발생했다.(328-329쪽)

“아시는 대로, 국영의료는 건강을 개인의 기본권으로 인정하고 의료를 공적 서비스로 제공해 누구나 평등하게 이용하는 제도예요. 그런데 롬바르디아주는 1998년부터 민영화를 추진했어요. 국영의료에 시장 논리를 끌어들여 사적 의료를 키운 거예요. 지금 이 주에 사립병원의 비중이 50%나 되고 계층 간 불평등도 심해요.”
이탈리아에서 국영의료 운영은 거의 전적으로 주의 몫이다. 중앙정부는 제도를 관리할 뿐 실제 의료 제공에 관한 권한과 책임이 주에 있다. 자율성이 있는 만큼 세부 내용이 주에 따라 다른데, 그러나 그 자치권으로 민영화를 추진한 주는 극소수다. 그중 대표적인 데가 롬바르디아다.(331쪽)

공공의료는 ‘누구나 건강하게’ 하는 의료다. 힘을 실어 강조하면, 누구나/언제/어디서나/건강하게 하는 의료다. ‘다 같이 운영에 참여하는’ 의료다. 그것을 이용하고 그것으로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다 함께 생각을 모으고 힘을 모아 만드는 의료다.
코로나19 사태는 우리에게 변화가 시급함을 일깨웠다. 온 국민이 고통을 감수해 이룩한 K-방역이지만, 바람 앞에 등불처럼 어느 순간 꺼져 버릴까 위태롭다. ‘공공의료’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의료제도의 작동 원리가 시장의 수익 대신에 공동체의 연대로 바뀌지 않으면.(3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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